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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NA] 세상의 운을 부르려던 어떤 상가에 대한 추억
 ym  07-11-19 | HIT : 2,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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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철거가 남긴 것
세상의 운*을 부르려던 어떤 상가에 대한 추억


*1966년 세운상가의 기공식에서 김현옥 서울시장은 “세계의 기운이 이곳으로 모이라”란 뜻으로 세운상가란 휘호를 썼다고 한다.

어느 날 나는 세운상가를 어언 20년 만에 다시 헤매고 있었다. 목적은 중고 오디오 구입. MP3디깅에 지쳐 나도 아날로그로 한갓지게 음악을 듣고 싶었다. 카라얀과 마일스 데이비스가 애용했다던 AR스피커에 테크닉스 턴테이블을 연결해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듣는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즐거워졌다. 현재 세운상가는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빈티지오디오의 메카이다. 늙수구레한 주인아저씨들이 뿌루퉁한 표정으로 신문을 보며, 호객행위엔 전혀 관심 없는 그런 매니악한 분위기.. 골목골목을 따라 늘어서 있는 잡다한 전자기기샵들 중에서 나는 어렵게 원하던 곳을 찾아냈다. 갑자기 아득한 10대 시절, 성인이 되기 위한 각종참고자료들과 빽판들, 마이클 셍커가 들고 나온 플라잉브이 깁슨 기타를 산 곳도 이곳 어딘 가였다는 생각이 났다. 그래, 이곳도 나를 성장시킨 소중한 기억이었구나. 내 무의식 어딘가에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었던 10대의 추억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골목 입구까지 나를 배웅해주었다.

오늘날 대도시는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유기체다. 지금은 건축계의 메가트랜드가 된 램 쿨하스도 스타건축가가 되기 전, 저서 ‘정신착란증의 뉴욕’(Delirious New York)에서 메트로폴리스의 산만한 정신구조의 계보를 특유의 필치로 그린 적이 있다. 대도시 서울에도 역시, 그 속에서 살아온 인간들처럼,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의식적인 모습과 감추고 싶은 무의식이 공존하고 있다. 잠들기 전 전의식 상태처럼 의식과 무의식이 오묘하게 공존하는 지역도 있다. 한 인간이 의식과 무의식이 엉켜, 갈등하고 화해하며 성장하듯, 이 도시엔 아옹다옹 성장통을 겪으며 살아온 나의 역사가 있다.

그런데 참 묘한 일이란, 그 감추고 싶은 무의식속에 진짜 자기 모습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외국에 나가 그 도시의 서브컬쳐씬을 보며 오히려 속살을 드러낸 도심의 진솔한 매력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100% 몸과 마음이 완전무결한 인간이 없듯이, 건강한 곳이 있으면 어딘가 아픈데도 있는 것이 대도시의 자연스런 모습이다. 그런 도시엔 글쎄.. 성형수술보다는 먼저 위로가 필요하지 않을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미국과 극적인 딜을 하여 이뤄낸 베트남참전, 형제, 부모들이 피를 흘리며 싸운 남의 나라 전쟁에 동맹국 미군의 피복을 대며 동대문과 청계천, 또 서울은 성장해왔다. 평화시장이란 이름이 한국전쟁 후 실향민들이 모여 평화를 염원하는 뜻으로 지어졌다는 애틋한 유래를 들은 적이 있는가? 어느 패션디자이너는 동대문시장을 보며 이곳에 오면 한국만의 유니크한 패션 인프라가 느껴져 자랑스럽다고까지 하더라. 게다가 세운상가는 당시 35세의 청년 건축가 김수근의 야심작이고, 지금의 타워팰리스처럼 고위층들이 앞 다투어 입주했던 한국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이다. 실패한 근대화의 상징물일 뿐이라고? 자신의 과거를 아프게 보듬어 안아보지 않은 인간이 현재모습은 사랑할 수 있을까? 그곳이 녹지대의 푸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하더라도 어쩐지 무늬만 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평화, 낙원, 세운, 이름도 정겨운.. 좀 후줄근하면 어떤가? 유니크하고 자생적인데 말이다. 하긴 이런 이름이면 소위 이 시대가 요구하는 명품이 될 순 없겠다.

내가 태어나기 전 60년대, 청계천 판자촌 철거, 그 후 놓인 청계, 삼일고가도로는 저개발의 추억, 낮게 깔린 무의식, 역사의 아이러니를 가리는 상징이었다. 당시 서울도시계획에 참여했던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손정목은 그의 저서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서, 박정희대통령이 외국사절들과 워커힐로 곧장 가기위해 이 고가를 놓았다는 비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워커는 아시다시피 한국전쟁시 활약한 미국장군이고, 워커힐호텔은 중앙정보부가 주한유엔군의 휴양지로 개발한 곳이다. 지금 그 옆엔 여지없이 수입명품 W호텔이 새워졌다. 정리하자면 서울의 역사는 일제잔재-한국전쟁-전후저개발-근대화-수입명품이라는 노선을 숨 가쁘게 달려왔다. 저개발이 근대화개발논리로 대체됐다면, 근대화는 수입명품으로 대체되는 식이다. 이제 고가도로마저 철거된 후 그곳엔 맑은(?) 인공하천이 흐르고 그 정점엔 수입명품인 올덴버그의 다슬기가 버티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근대화세대의 베이비붐시대에 태어나 사상최고의 교육열을 경험했던 70년대생, 내 청춘의 한 부분을 장식했던 세운상가마저 철거된다.

철거와 개발은 마약중독같이 계속된다. 작가 최정화가 자신의 사무실이 있는 낙원상가를 여기저기 기워 새롭게 리노베이션을 하고 싶다고 한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의 아티스트와 건축가가, 서울시의 수주를 받아, 익숙하면서도 낯선, 씩씩한 모습으로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같은 세운상가나 낙원상가를 볼 순 없을까? 그게 더 비용도 싸고, 건강에도 좋을 것 같은데.. 하지만, 그 곳엔 영국산 첨단 마약이 투입된다지..

서울의 개발중독은 시작 된지 이미 오래다. 그 댓가는? 마약중독이 무릇 그렇듯, 계속 더 강력한 자극을 원하고, 가격은 점점 더 비싸질 것이다. 거대담론에 대한 집착이라면 어느 세대 못지않은 386세대, 그 세대가 배출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대정신에도 걸 맞는 수입명품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와 박정희 시대의 원조 불도저 김현옥, 청계천복원의 주인공 이명박에 이은 역대 불도저 서울시장 탑3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려 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명칭은 ‘서울도심재창조’. 젊고 잘생긴 시장답게 마스터플랜도 잘빠졌다. 이세이 미야키를 즐겨 입는다는 그 이름도 신비한 여류건축가가 동대문운동장을 헐고 설계할, 새로운 서울시의 랜드마크가 될 건축물의 이름은 ‘월드디자인플라자’란다. 그래서 서울을 5대 컬렉션의 도시로 육성(?)시킨다니, 명품시민의 위상에 걸 맞는 육성회비를 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정신이 아찔하다.

이 수입마약은 위정자들의 구질구질한 무의식을 한방에 브레인워싱 해 줄 수 있을까? 그래야 비싼 값을 할 텐데? 시민들의 호응은? 그럴수록 남김없이 깨끗하게, 미래적으로 환타스틱하게. 그러나 그들이 낙태시킨 가여운, 우리를 아프게 성장시킨 도심의 무의식은 영국산 명품건축이 내려다보는 푸른 공원 어딘가에서 너덜너덜해진 채 우리를 원망할 것이다. 그건 이제 다시 구할래야 구할 수 없는 빈티지 명품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그 인프라를 이어받은 유니크한 서브컬쳐가 건조한 도시에 활력을 주는 무의식적 매력으로 발전했을지도 모르는데.. 그 원망은 글쎄.. 무엇으로 위로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졸부들의 1차 욕망은 명품구매를 통한 구질구질했던 과거망각과 자기과시다. 내면응시와 자기반성할 겨를이 없는 이들에겐 무한경쟁을 통한 차별성만이 열등감극복의 최선책이다. 괴롭지 않기 위해서,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서, 또 새로운 차별성 치적과 웰빙을 위해서 서울은 서울의 역사를 계속 망각해나갈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명품의 시대. 이제 우리는 명품 시민, 어쨌든 서울은 명품 도시다..!

-화가 강영민

에디터 이민정
사진 정재환
ARENA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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